“신앙과 철학 사이에서 나는 질문한다”

“신앙과 철학 사이에서 나는 질문한다”
“하나님의 지혜만이 유일한 진리입니다.”
나는 교회에서 수도 없이 이 말을 들어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그 외의 인간적 지혜는 불완전하고, 심지어는 죄된 것이라 여겨졌다. 어떤 목사님은 강단 위에서 철학과 인문학을 “세속적 쓰레기”라며 단호하게 경계하셨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어쩐지 조여왔다. 나는 틀린 걸까? 내가 읽는 책들이, 내가 품는 질문들이 정말 잘못된 것일까?
나는 철학책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삶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는 태도를 좋아한다. “나는 누구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 이런 질문들은 단지 책 속 이론이 아니라, 내 삶의 한복판에서 진지하게 울려오는 질문이었다. 그런 물음들에 귀 기울이기 위해 나는 철학자들을 찾아 읽었다. 그들이 신을 어떻게 보았는지, 인간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교회 안에서는 종종 ‘신앙이 약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떤 이들은 나를 조용히 걱정의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철학은 결국 인간의 지식일 뿐이야. 성경만이 진리야.” 맞는 말이다. 성경이 진리라는 고백에 나는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묻고 싶었다. 진리라면, 왜 질문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역사를 돌아보면 기독교는 철학과 끊임없이 대화해 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 철학 안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찾았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빌려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알빈 플랜팅가 같은 철학자들은 믿음의 이성을 통해 신앙을 더욱 깊이 있게 변증한다. 신앙이 철학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을 사용해 진리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려 했던 것이다.
나는 이제 철학책을 읽을 때, 그것을 ‘진리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인간이 진리를 향해 던진 질문으로 여긴다. 그 질문들은 때때로 거칠고, 때때로 방향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진리를 찾는 물음이라면, 하나님은 그런 갈망도 외면하지 않으신다고 믿는다.
오히려 나는 철학을 통해 나 자신의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세상의 지혜와 어떻게 다른지, 인간의 이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으며, 그 한계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게 되는지를 더 또렷하게 본다.
철학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철학은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신앙은 질문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질문 속에서도 진리를 잃지 않는 힘이라고 믿는다. 나는 신앙인이다. 동시에 질문하는 존재이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철학책을 펼친다. 하나님 앞에, 그리고 나 자신 앞에 더 진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