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사회』 – 절망의 끝에서 피어나는 희망에 대하여

『불안사회』 – 절망의 끝에서 피어나는 희망에 대하여
어느 날 문득, 나는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그것은 조용함이 아니라, 모두가 두려움 속에서 입을 다문 침묵이었다. 뉴스는 늘 위기와 재난을 말하고, 사람들의 대화는 불안으로 시작해 불안으로 끝났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살아간다’기보다, 불안을 견디며 버티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한병철의 『불안사회』를 읽는 동안, 나는 이 무거운 시대의 공기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작가는 말한다. 현대 사회는 피로를 넘어 불안으로 이동했다고. 과거의 ‘성과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착취하며 살아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믿지 못한 채, 포기와 절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이 말은 마치 내 마음속 그림자를 직접 비춰주는 듯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불안하고, 무언가를 이뤄도 금세 허무가 찾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음’을 요구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끝없는 ‘다음’ 속에서, 현재를 잃어버린다.
불안은 우리를 분리시킨다. 나는 그것을 안다.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관계는 조심스러워지고, 결국 고립된다. 나 또한 그랬다.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며 스스로를 보호했지만, 그 보호막 안에서 점점 외로워졌다. 불안은 나를 지키는 듯하면서 나를 고립시키는 가장 교묘한 감옥이었다.
그러나 한병철은 그 감옥의 벽에 작게 새겨진 문을 가리킨다. 그 문의 이름이 바로 **‘희망’**이다. 처음엔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절망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희망이라니.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긍정적인 마음’이 아니다. 그는 희망을 절망을 부정하지 않는 힘이라고 말한다. 희망은 절망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을 끌어안고, 그 안에서 다시 눈을 뜨는 것이다.
책장을 덮은 뒤,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희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믿는 일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올 무언가를 위해 지금을 준비하는 마음. 작가는 에리히 프롬을 인용하며 희망을 이렇게 정의한다.
“희망이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을 위해 매 순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희망은 기다림이 아니라 준비이며,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행위였다. 희망하는 자는 행동한다. 그는 움직이며,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향해 작게나마 손을 내민다.
그때 문득, 다른 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속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이 외면한 수녀원의 비밀을 알게 된다. 누구도 손대지 않던 그 불의에 맞서, 그는 한 여인을 구해낸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것이 단순한 ‘용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안사회』를 읽고 나니 알게 되었다. 그것은 희망의 행위였다. 그는 불안을 견디며 절망의 벽을 넘었고, 타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희망은 바로 그렇게, 불안한 손끝에서 피어난다.
한병철이 말하는 희망은 낙관주의와 다르다. 낙관주의는 “모든 게 잘될 거야”라는 자기 위로에 머문다. 반대로 비관주의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라며 세상을 포기한다. 그러나 희망은 그 둘 사이에서, 조용히 절망을 응시한다. 희망은 어둠을 직시하되,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태도다. 절망을 외면하지 않기에 더욱 단단하고, 불안을 견디기에 더욱 깊다.
나는 그 말을 읽으며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희망이란 미래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여는 용기라는 것. 불안이 우리를 닫히게 만든다면, 희망은 우리를 다시 연결한다. 희망은 관계다. 나와 타인, 나와 세상, 나와 내일을 잇는 보이지 않는 실. 그 실을 붙잡는 순간, 불안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요즘 나는 하루를 버티는 일보다, 하루를 연결하는 일에 집중하려 한다.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닿기를, 나의 작은 친절이 또 다른 희망으로 번지기를 바라며 산다. 희망은 거대한 신념이 아니라, 그런 사소한 행동 속에서 자란다. 희망은 기다림이 아니라 손 내밂이고, 기도이자 행위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조용한 평화를 느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세상은 불안하고, 내일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불안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안은 나를 움츠리게도 하지만, 동시에 나로 하여금 희망을 찾게 한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더 강해진다.
오늘 나는 다시 이 문장을 되뇐다.
“희망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을 위해 매 순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장은 나에게 다짐이 되었다. 나는 불안을 피하지 않고, 그 속에서 희망을 준비하며 살아가려 한다.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고, 믿고, 손을 내미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여전히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