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기

나는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 - 조직되지 않은 존재에 대하여

이번생 2025. 7. 1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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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lto Blissett, Untitled Nature Monument(현대 풍경화)- 이 작품은 인간이 불참한 자연 속 풍경 앞에서, 우리의 존재는 어떻게 해체되고 다시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 - 조직되지 않은 존재에 대하여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2009. 창비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느냐고. 어느 학교, 어느 조직, 어느 계열, 어느 노선인가.


   이 물음은 때로 조심스럽게, 때로는 무심하게 던져진다. 하지만 그 물음의 이면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속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는 믿음. 소속이 있어야 신뢰가 발생하고, 소속을 통해서만 발언이 허락된다는 어떤 문법.


   나는 그 문법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니, 일부러 적응하지 않는다. 내 삶은 언제나 주변부에 있었고, 언제나 선 밖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이 나의 결핍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임을 안다.


   송경동 시인은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라고 썼다. 이것은 시인의 말이지만 동시에 나의 말이기도 하다. 나는 조직되기를 거부한 존재로서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직되지 않은 존재로서 말하고 싶다.


1. 조직되지 않은 존재는 무엇에 기대는가


   우리는 보통 ‘소속’을 통해 자신을 규정한다. 소속은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의미를 제공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안정시킨다. 하지만 소속은 동시에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며, 질문을 억제한다. 소속은 한편으로 질서이고, 다른 한편으로 지워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기대어 있는가? 나는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어느 곳에도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고, 꽃잎에 흔들리며, 무너진 담벼락 앞에 머무르고 있다. 이 세계의 사소하고 작고, 부서지고 말라가는 것들 속에, 나는 감응하며 존재한다.


   이 감응은 지식 이전의 것이다. 그것은 이념이 아니라 감각이고, 조직이 아니라 관계이며, 소속이 아니라 체온이다.


2. 무위와 소속되지 않음

   조직되지 않은 삶은 종종 ‘무위’의 삶으로 여겨진다. 쓸모없음, 무능함, 비효율.

   하지만 나는 무위가 결코 무기력이 아님을 안다.
무위는 저항이며, 존재의 방식이다.

   무위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존재의 방식,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의 흐름, 단단히 규정되지 않은 관계 맺기의 실천.

   나는 ‘조직’이라는 기표 대신, 강물과 꽃잎과 바람이라는 비정형의 것들과 함께 소속된다. 이것은 해체가 아니라 또 다른 형성이다. 조직되지 않은 존재는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새롭게 움직이는 존재다.

메건 가브리엘 해리스(Megan Gabrielle Harris)의 2025년 작 '아스트랄(Astral)'


3. 불확실성에 기대어 말하기

   사람들은 흔히 어떤 말이 타당하려면, 그 말의 발화자가 ‘제대로’ 훈련받았고, 어떤 제도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말의 진실은, 말하는 자의 소속보다, 그 말이 감각하고 있는 진실 속에 있다.


   강물은 누구의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지만, 누구보다 넓은 세계를 품는다. 꽃잎은 어떤 이념에도 소속되지 않지만, 누구보다 정확한 계절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바람은, 언제나 이름 없이 세계를 흔들고 다닌다. 나는 그 바람에 선동당하고 싶다.
그 이름 없는 운동에 감응하면서, 세계를 다시 느끼고 싶다.


   이 시대는 우리가 어딘가에 속해 있어야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저 들에 속해 있고, 저 허공에 반응하고 있으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계를 기다리는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나는 이 불확실함 안에서 말한다. 이 불확실함이야말로 살아 있음의 증거이기에.




나는 소속되지 않음으로써 존재한다.

   무위는 나의 언어이고, 바람은 나의 조직이다.
그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강물에게 이끌리고 있다.


Nicola Barth, Abstract Surreal Landscape(혼돈과 감각의 흐름) - 이 작품은 추상과 초현실의 결합을 통해, 인위적 구조를 거부하고 감각과 감정의 흐름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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