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은 천국을 만들고 소승은 천국에 간다

대승은 천국을 만들고 소승은 천국에 간다
낙원이나 천국은 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낙원이나 천국은 가는곳이 아니라 만드는 곳이다.
신앙심이 돈독한 사람들은 현실세계와는 초연한 척, 거리를 두고 내세의 천국을 꿈꾼다. 이들은 겉으로는 좋은, 성스러운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소승이다. 자기 자신의 구원에만 노력한다. 권력자들의 전횡 축출과 나쁜 경제•정치•사법제도의 개혁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것은 악하고 부조리한 사바세계의 특징이므로 '그냥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깨끗한 고가의 고급 천은 식탁을 닦는 데는 무용지물이다. 값싸고 더러운 걸레가 세상을 정화한다. 이 얼마나 아이로니컬한가?
힘들고 귀찮고 사익(私益,private interest)이 없어도, 새로운 제도하에서 혜택을 누릴 미래중생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대승이다.
『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
대승은 천국을 만들고, 소승은 천국에 간다
낙원이나 천국은 ‘가는 곳’이 아니라 ‘만드는 곳’이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은 여전히 천국을 저 먼 내세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상향으로 생각한다. 현실은 혼탁하고 부조리하며, 인간 세상은 결국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으니 굳이 관여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만 지키면 된다고 여긴다. 이들은 겉으로는 경건하고 성스럽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마음의 중심에는 ‘자기 자신의 구원’만이 놓여 있다. 그래서 그들은 대승이 아니라 소승이다.
소승은 ‘천국에 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내세에 복을 누리고자 금식하며 기도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러나 대승은 ‘천국을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낙원은 하늘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서로를 위하여 일굴 때 비로소 현실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천은 식탁의 얼룩을 닦아내지 못한다. 반대로 값싸고 때 묻은 걸레야말로 온갖 찌든 때를 닦아내며 세상을 정화한다. 사회의 모순을 마주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며, 낡은 제도를 개혁하는 일은 고귀한 성직자의 책상 위에서가 아니라, 땀 흘리고 때 묻은 사람들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역사 속의 개혁자들을 떠올려 보라. 누구 하나 편안한 길을 걸은 이는 없었다. 권력의 핍박을 받았고, 동시대 사람들의 조롱을 감수해야 했으며,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 위에서 새로운 제도가 자리 잡고, 미래 세대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대승은 바로 이런 길을 말한다. 힘들고 귀찮고 당장의 사익이 없더라도, 내세의 복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중생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 그것이 대승이다.
오늘의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정한 정치, 불평등한 경제, 불공정한 사법제도는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이를 ‘세속의 더러움’으로 치부하며 멀리한다. 그러나 대승의 길은 다르다. 더러운 세상에 발을 담그고, 힘들더라도 기꺼이 싸우며, 무너진 제도를 바로잡으려는 이들의 손길 속에서만 천국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낙원은 먼 하늘 어딘가에 이미 마련된 집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하여 희생하고, 더러운 세상을 닦아내고, 함께 새로운 질서를 세워갈 때 이 땅에서 구현되는 삶의 형식이다. 그러므로 대승은 천국을 ‘만드는 자’이고, 소승은 천국에 ‘가고자 하는 자’다. 선택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