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없이 살 수 없는 존재

말씀 없이 살 수 없는 존재
생존을 넘어 ‘존재’를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인간은 매일 음식을 먹는다. 이 행위는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다. 먹지 않으면 우리는 약해지고, 결국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음식은 단순한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생존의 전제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경건한 수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신명기 8:3, 마태복음 4:4)
성경은 인간을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로 규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떡으로 살되, 떡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이 말은 육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실존이 물질적 조건을 넘어선 차원에 있음을 선언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의미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먹고, 자고, 숨 쉬는 것으로 생존은 가능하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사라질 때 인간은 내적으로 붕괴된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은 생존을 넘어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등장한다.
기독교 철학에서 말씀은 단순한 정보나 교훈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말씀’은 세계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언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요한복음은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고 선언한다. 이는 말씀이 현실을 해석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떠받치는 근원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잃는다는 것은 지식을 잃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토대를 잃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항상 어떤 기준에 의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한다. 이 기준이 무너지면 인간은 방향을 상실한다. 현대 사회는 수많은 정보와 선택지를 제공하지만, 정작 “무엇이 옳은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이 공백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비교하며, 자신을 소모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 혼란 속에서 존재를 정렬하는 기준선으로 기능한다. 말씀이 없을 때 인간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
“날마다 말씀을 먹는다”는 표현은 이 점에서 매우 철학적이다. 음식이 몸에 들어가 흡수되고 에너지로 전환되듯, 말씀은 인간의 내면에 스며들어 사고방식과 가치 판단을 형성한다. 이것은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 과정이다. 어제 먹은 음식으로 오늘을 살 수 없듯, 과거의 신앙 경험만으로 현재의 삶을 지탱할 수는 없다. 신앙은 기억이 아니라 관계의 현재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고백은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중요한 비판을 포함한다.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은 인간이 스스로 충분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하는 선언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을 낮추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고백이다. 인간은 공급받아야 사는 존재이며, 의존 속에서 존재가 유지된다. 기독교 철학은 이 의존을 결핍이 아니라 존재 방식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것은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모든 생존 조건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다고 고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기쁨은 상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말씀이 여전히 그의 존재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살아 있는 한, 인간은 무너지지 않는다. 삶이 흔들릴 수는 있어도, 존재의 중심은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은 신앙인의 결의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진술이다. 우리는 날마다 음식을 먹어 몸을 유지하듯, 날마다 말씀을 통해 삶의 방향과 의미를 공급받는다. 말씀이 사라진 삶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 수 있으나, 내적으로는 점점 공허해진다. 반대로 말씀이 살아 있는 삶은 외적으로 부족할 수 있으나, 존재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 고백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이 우리의 기준이며, 무엇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가. 기독교 신앙은 여기에 분명하게 답한다. 인간은 떡으로 살되, 말씀으로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 말씀이 살아 있는 한, 인간은 오늘도 살아갈 수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