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접속, 희망 없는 미래 — 한병철과 스마트폰 시대의 침묵에 대하여

사랑 없는 접속, 희망 없는 미래 — 한병철과 스마트폰 시대의 침묵에 대하여
어느 날 문득, 나는 생각했다.
하루 동안 내가 ‘무엇’을 가장 많이 만졌는가?
사람의 손일까, 따뜻한 커피잔일까, 바람 부는 나무일까.
아니다.
내 손끝이 가장 자주 접촉한 대상은 스마트폰이었다.
현대인의 삶은 손 안의 사각형에 담겨 있다.
이 작은 기기는 이제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다.
그 안에는 나의 직장, 인간관계, 감정, 소비, 심지어는 종교와 고통까지 다 들어 있다.
치과에서조차 우리는 고통을 견디기 위해 화면을 들여다보며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친다.
이 묘한 풍경을 철학자 한병철은 이미 감지했다.
2023년 4월 11일, 포르투에서 그는 ‘에로스’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사랑에 대해, 그리고 타자의 소멸에 대해 말했다.
사랑이란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근원적인 열림이자 감각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타자를 견디지 못하고, 타자 없는 관계를 추구하며,
그 결과 사회는 점점 메말라간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실제로 접촉하는 거의 모든 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그의 말은 단순한 철학적 진단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이다.
지하철의 정적 속에서, 식탁 위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연인들의 카페 테이블 위에서조차,
우리는 서로의 눈을 피하고 화면을 본다.
스마트폰은 친밀함을 위한 도구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로 하여금 타자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게 한다.
‘좋아요’와 ‘읽씹’은 관계를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가 되었고,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압축되어 전송된다.
한병철은 이를 ‘투명성의 폭력’이라 불렀다.
모든 것이 보여지고, 공유되고, 설명되어야 하는 시대.
그러나 그 안에 남는 것은 공허뿐이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연결되어 있을 뿐인가?
그로부터 이틀 후, 같은 포르투에서 그는 다시 무대에 섰다.
이번에는 ‘희망의 정신’이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한병철은 말했다.
“희망은 우리를 지친 미래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도약이자 열정이다.”
희망은 단지 낙관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차원에서, 즉 마음과 정신의 이정표가 되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빛이다.

나는 이 두 강연 사이에서 무언가 중요한 연결을 발견했다.
타자를 잃어버린 시대에,
사랑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희망은 어디서 오는가?
희망은 타자와의 접촉에서 온다.
그것은 스마트폰의 화면이 아니라, 사람의 눈빛에서 시작된다.
희망은 누군가의 상처를 마주할 때 움트고,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순간 깊어진다.
우리는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새로운 메시지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그러나 진짜 메시지는 그 너머에 있다.
우리가 외면한 얼굴, 듣지 못한 목소리, 잡지 못한 손에 있다.
타자는 멀리 있지 않다.
그는 내 곁에,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희망은 다시 태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