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육체는 왜 유혹에 약한가

인간의 육체는 왜 유혹에 약한가
사람은 마음으로는 옳은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그 길과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이 먼저 움직이고,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망이 마음을 앞질러 간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기도를 미루고, 말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휴대전화를 붙잡는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분노를 놓지 못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순간적인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렇게 욕망과 유혹에 취약한 존재일까?
우리의 육체는 본래 생존과 쾌락을 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고, 피곤하면 쉬고 싶으며, 외로우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진다. 위험을 피하고 안전한 것을 선택하며, 힘든 것보다 편안한 것을 찾는다. 이러한 본능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연스러운 기능이다.
문제는 인간의 욕망이 언제나 ‘필요한 만큼’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배고픔은 식사를 통해 해결되지만, 맛있는 음식은 더 먹고 싶어진다. 돈은 생활을 위해 필요하지만 더 많이 가지고 싶어진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관계를 위해 필요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욕망으로 변한다. 성적인 욕망 역시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절제되지 않을 때 사람을 목적이 아닌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
욕망은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로 찾아온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오늘 하루쯤은 괜찮아.’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내가 힘들었으니까 이 정도는 누려도 돼.’
그렇게 욕망은 자신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욕망에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어느 순간 그것을 자신의 선택이라고 믿게 된다.
신앙생활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삶이다. 반면 육체는 지금 당장 느껴지는 것을 원한다. 말씀은 ‘기다리라’고 하지만 욕망은 ‘지금 가져라’고 말한다. 신앙은 ‘용서하라’고 하지만 감정은 ‘네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기억하라’고 말한다.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네가 직접 통제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결국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보이는 욕망을 거슬러 살아가는 일이 된다.
그래서 신앙인은 때때로 자신에게 실망한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도 같은 유혹 앞에서 반복해서 넘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가?’라는 자책이 찾아온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유혹을 받는다는 사실과 유혹에 굴복한다는 사실은 같은 것이 아니다.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곧 믿음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욕망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다.
육체는 끊임없이 편안함을 요구하지만, 믿음은 때때로 불편함을 선택하게 한다. 육체는 즉각적인 보상을 원하지만, 믿음은 기다림을 배운다. 육체는 나를 중심에 세우려 하지만, 신앙은 나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을 바라보게 한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육체를 미워하는 일이 아니라 육체의 요구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배고프다고 아무것이나 먹지 않는 것처럼, 화가 난다고 아무 말이나 하지 않고, 외롭다고 아무 관계나 붙잡지 않으며, 욕망이 생겼다고 그것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감정이 명령은 아니다.
‘느끼는 것’과 ‘선택하는 것’ 사이에는 작은 공간이 있다.
신앙은 바로 그 공간을 넓혀가는 훈련일 것이다.
유혹이 찾아왔을 때 즉시 반응하지 않고 한 번 멈추는 것. 화가 났을 때 한마디를 삼키는 것. 욕망이 강해질 때 그 욕망을 바라보며 ‘지금 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라고 묻는 것. 그리고 다시 자신이 믿는 가치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
어쩌면 거룩함은 욕망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욕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인생의 운전대를 맡기지 않는 상태인지 모른다.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기에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신앙을 가진 사람도 배고프고, 외롭고, 화가 나고, 인정받고 싶으며, 때로는 강한 유혹 앞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신앙은 바로 그 흔들리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되는 것.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욕망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마음에 세우는 것. 순간의 쾌락보다 오래 남는 평안을 선택하고, 나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육체를 가진 인간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오늘도 우리의 몸은 편안함을 원하고, 마음은 즉각적인 만족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순간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본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묻는다.
‘지금 내가 선택하려는 것은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또 다른 욕망의 노예로 만드는가?’
신앙생활의 어려움은 우리가 약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욕망과 이성, 본능과 양심, 육체와 영혼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연약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다.
완벽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에 믿는다. 강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기도한다. 유혹이 없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유혹 앞에서 흔들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
결국 믿음이란 욕망이 없는 삶이 아니라, 욕망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인지도 모른다.
육체는 오늘을 원하지만 믿음은 내일을 바라본다.
육체는 나를 만족시키려 하지만 믿음은 나를 변화시키려 한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매일 선택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신앙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