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의 재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자연은 승자와 패자를 모두 따뜻하게 품어준다.
'선비'는 삼국시대 무렵부터 중국에서 공부했거나 유가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을 의미하며, '선비 정신'도 그 시기에 형성되었다. 신라의 유학자 최치원은 "지혜로운 사람은 가난해도 즐거워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유해도 근심이 많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 말의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최치원이 자신의 시 〈제가야산독서당〉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狂奔疊石吼重巒 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咫尺間 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 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 고교유수진농산
'겹겹이 쌓인 돌 사이로 거친 물소리가 봉우리들 사이를 울리네. 사람의 목소리가 가까이 있어도 분간하기 어렵네. 시시비비가 들려올까 두려워 온 산을 감싸도록 흐르는 물을 두었나 보다.'
어떤 고난과 역경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처럼 극복할 수 있음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계속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은 어디에서도 만족을 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자연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지혜를 얻기 어렵다.
최치원은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겨우 열두 살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으며, 열일곱 살에 '진사갑과'라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885년 신라로 돌아온 그는 정치적 위기가 심화된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894년에 진성여왕에게 여러 개의 시무책을 제시했지만, 당시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방랑하다 가야산에 은거했다. 자연 속에서 속세와 단절하고 하나가 되어 사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거치는 역사 속에서 우리는 지식인들이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축출되거나 사라지는 모습을 반복해서 볼 수 있다. 최치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치유하고 아름다운 시를 통해 마음을 다스렸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아는 척하는 것은 오히려 무지를 드러내는 것임을 그의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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