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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의 “응” - 햇살의 방, 신의 대답

by 이번생 2025.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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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응” - 문정희



햇살의 방, 신의 대답


대낮이었다.
햇살은 너무 가득해서, 어딘가 불경하게 느껴질 만큼 맑고 밝았다.

너는 내게 물었지.
“지금, 나랑 하고 싶어?”

그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건 몸의 움직임을 묻는 것도, 감정의 방향을 확인하는 것도 아닌,
존재와 존재가 얼마나 깊이 침투할 수 있는지를 묻는
언어가 할 수 있는 가장 투명한 방식의 고백이었다.


나는 잠깐 숨을 들이켰고, 문자 하나를 피워냈다.

그 말은 내 입술을 통해 나왔지만, 사실은 심장에서 길어 올린 단어였다.


그때 세상이 이상하게 뒤집혔다.
해는 둥글게 네 위에 걸려 있었고,
달은 고요히 내 아래 떠 있었다.
낮과 밤이 동시에 깃드는 침대 위,
우리는 언어로 서로를 겹쳤다.
입맞춤 하나하나가 문장이었고,
손길 하나하나가 문학이었다.


너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고,
나는 그 웃음 안에서 길을 잃었다.
우리가 만든 그 방, 신의 방 같았어.
신이 만들지 않았고, 우리가 만든.
신이 준 축복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창조한
정결한 야생의 언어로 이루어진 완성.


그 방 안에서는 모든 것이 설명되었어.
왜 인간은 말하게 되었는지,
왜 사랑은 망설임 끝에 고백되는지를.


햇살은 여전히 쏟아졌고,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마주 누워 있었다.
하지만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
.

그것은 동의이자 구원,
희열이자 평화,
침묵이자 외침이었다.


그날,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은
어떤 시보다 짧았고,
어떤 기도보다 분명했다.


”응“




《신의 침묵》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멈춘 그 자리에
심장이 눕고
숨결이 천천히 벽을 물들였다

창밖엔 아직도
해가 남아 있었고
달은 거울처럼
천장에 떠 있었지

이불 위로 흩어진
너의 손톱, 나의 뺨,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모든 언어들이
조용히 녹아내렸다

사랑은 대화가 아니었다
그날의 사랑은
침묵 속에서만 끝까지 말해지는 것

우리는 서로를 등지고 누웠지만
몸의 방향과 다르게
마음은 여전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너의 등뼈를 따라
내 생각이 천천히 걸어가
다시 한 글자를 떠올렸다


그 말은 여전히
방 안에서 가장 뜨거운 빛이었다



   ‘응’이라는 말, 짧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을 움직입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응?” 하고 묻는 순간, 우리는 말 대신 마음을 내어주듯 “응.” 하고 대답하지요. 그 한마디로 걱정이 줄어들고, 거리가 가까워집니다.

   시인은 이 말을 ‘눈부신 언어의 체위’라고 했습니다.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어쩐지 정확한 표현 같기도 해요. 두 손바닥이 살며시 맞닿아 소리를 내듯, 그 짧은 말 안에 마음이 조용히 부딪히고 스며듭니다.

   ‘응’은 배우지 않아도 아는 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던 말. 입술을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말. 짧고 소박하지만, 그 속에 있는 긍정과 온기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응.”이라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우리는 함께 걷고,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아무 말 없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요. ‘응’이라는 글자 안에 나란히 있는 두 개의 이응처럼, 우리도 그렇게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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