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워낼 수 없는 슬픔에 대하여
슬픔이란,
차라리 아파서 울 수 있다면 낫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저 조용히, 말없이, 마음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것.
말 한마디로 풀리지 않고
시간조차 그저 스쳐 지나갈 뿐, 닿지 못하는 감정.
나는 그것을 지우려 했다.
덮으려 했다.
그러나 지우는 손끝이 점점 더 짙은 자국을 남겼고
덮으려 한 마음은
오히려 그 무게로 더 깊어졌다.
너를 떠올리지 않으려 할수록
모든 사물에 너의 흔적이 깃든다.
햇살이 머문 커튼 자락에도,
식탁 위에 식지 않은 찻잔에도,
익숙한 침묵 속에도,
네가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라고.
하지만 어떤 슬픔은
시간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시간은 위로가 되기보다
그리움을 더 조용히 퇴적시킨다.
비워낼 수 없는 이 감정은
어쩌면 내 안에 살아 있는 또 하나의 생명일지도 모른다.
너를 기억하게 하는 방식,
내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
그러니 이 슬픔은
더 이상 쫓아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내 일부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 슬픔과 함께 걷는다.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가볍게.
그러나 분명히—
조용히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걸음으로.
슬픔은 보통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엷어진다고들 말한다. 마치 물 위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처음엔 진하게 퍼지지만 점차 투명해진다고. 그러나 세상에는 그렇게 희석되지 않는 슬픔도 있다.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하게 굳어가는 그런 슬픔. 그것이 바로 비워 낼 수 없는 슬픔이다.
이런 슬픔은 대개 어떤 ‘상실’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머물고 싶을 때, 혹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남겨진 채로 세상이 흘러가 버릴 때. 그때 우리 마음 어딘가엔 무언가가 남는다. 그것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감정,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무언가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슬픔’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 슬픔은 버리려고 할수록 더 깊어진다. 마치 지우려는 자국이 오히려 종이를 찢듯, 자꾸만 덧나는 상처처럼.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없애려고 애쓰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 가슴에 자라듯이, 그 슬픔을 품고 함께 숨 쉬는 법을.
비워 낼 수 없는 슬픔은, 때로 우리를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든다. 누군가의 아픔에 조금 더 귀 기울이게 되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지닌 무게를 알게 된다. 그렇게 슬픔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다시 세워 올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비워지지 않는 감정이라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하나의 치유일 수 있다.
그 슬픔은 지금도 당신의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당신이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https://youtube.com/shorts/ddJDl8xqxwE?si=kWdMHcTx7aT5S2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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