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뒤집을 5가지 놀라운 통찰
많은 신앙인에게 신앙의 첫 모습은 어릴 적 주일학교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 혹은 풍문처럼 들어온 단순한 믿음의 형태로 자리 잡곤 합니다. 특별한 의심 없이 받아들인 이 믿음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때로는 더 깊고 질서 있는 이해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원제: 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인간의 사고방식을 두 가지 시스템으로 설명합니다. 시스템 1은 빠르고 직관적이며 거의 자동으로 작동하는 '빠른 생각'입니다. 반면 시스템 2는 노력이 필요하고 분석적이며 신중한 '느린 생각'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신앙생활이 대부분 '빠른 생각'에 의존한다면, 신학은 자신의 믿음과 전통, 경험에 의도적으로 '느린 생각'을 적용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독교 신학자 김학철 교수의 신앙에 '느린 생각'을 적용했을 때 발견하게 되는 놀랍고도 중요한 다섯 가지 통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통찰들은 당신의 신앙을 더 견고하고 사려 깊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1. 당신의 신앙은 '빠른 생각'인가, '느린 생각'인가?
'빠른 생각'은 우리의 기본적인 사고 모드입니다. 2 + 2의 답을 즉시 떠올리거나, 친구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거나, 익숙한 길을 운전하는 것처럼 자동적이고 직관적으로 작동합니다. 생존을 위해 극도로 효율적인 이 방식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도 부릅니다.
반면 '느린 생각'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분석적 사고입니다. 35 X 273과 같은 복잡한 계산을 하거나, 논리적 추론을 하거나, 화를 내기 전에 상황을 따져보는 자기 통제와 같은 활동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려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뇌는 게으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작동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을 신앙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신앙적 반응과 판단은 '빠른 생각'에 의존합니다. 하지만 신학은 성경, 기독교 전통, 교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험과 감정을 느리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느린 생각'의 과정입니다. 최악의 경우는, 머리에 불쑥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주장한 뒤, 그 충동적인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느린 생각'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불쑥 떠오른 생각을 사람들이 반박하면 내 말이 맞다고 주장하려고 느린 생각을 시작하는 거죠."
2. 바울은 아테네에서 실패하지 않았다: 흔한 설교의 오해 바로잡기
'빠른 생각'으로 굳어진 대표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바로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바울의 아테네 선교 이야기입니다. 많은 설교에서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 바울이 아테네 철학자들과 지적으로 논쟁하려 했지만 처절하게 실패했다. 이 경험 이후 그는 지적 논쟁을 포기하고 오직 십자가만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이 설교는 지적인 토론보다 단순한 선포가 중요하다고 결론 내립니다.
하지만 본문을 '느리게' 다시 읽어보면 정반대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실패였는가? 성경은 아테네 선교의 결과로 회심자가 있었다고 명확히 기록합니다. 특히 아레오바고 관리였던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영향력 있는 여성을 언급합니다. 이는 다른 지역의 선교와 마찬가지로 박해 속에서도 분명한 성과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의 선교는 결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논쟁을 포기했는가? 더 놀라운 사실은 '토론하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단어 '디알레고메이(διαλέγομαι)'가 사도행전에서 아테네 사건 이후에야 비로소 반복적으로, 그리고 아주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 단어는 17장 이전에는 거의 나오지 않다가,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간 바울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했다"(행 18:4)고 기록된 이후 계속해서 사용됩니다. 이는 바울이 아테네에서 논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토론의 중요성과 효과를 깨달았음을 시사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당대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헬라 시인의 말을 인용했고, 아테네의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친 제단을 보았을 때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이라고 설명하는 종교학적 논증을 펼쳤습니다.
이처럼 '빠른 생각'으로 굳어진 통념을 '느린 생각'으로 꼼꼼히 되짚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경을 훨씬 더 깊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최고의 변증은 성경에 기대지 않을 때 시작된다
변증(Apologetics)은 기독교 신앙을 세상에 설명하고 변호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이 변증을 시도할 때 "A가 진리인 이유는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진리인 이유는 성경 스스로 진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와 같은 순환 논리에 빠지곤 합니다. 이는 외부 사람들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동어반복'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변증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신학자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역설적인 통찰을 제시합니다.
"특별히 성서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동시대 주변 문화의 호소력 있는 논증들을 구성하는 데에 변증의 초점이 있다."
이 말의 핵심은 상대방에게 성경의 권위를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논리와 문화적 언어를 사용해 다리를 놓는 것이 변증의 목표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전제하지 않고도 기독교 진리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호소력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변증의 시작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무조건 내세우는 '빠른 생각'의 유혹을 넘어,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차근차근 논증을 쌓아가는 '느린 생각'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문을 엽니다.
4. 기독교 변증의 목표는 '논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16절은 변증의 내용만큼이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고대 수사학의 세 가지 고전적 요소를 통해 효과적인 변증의 자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토스(Ethos): 말하는 사람의 품성 변증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온유하고 두려워하는 자세입니다. 상대를 비웃거나 오만한 태도로 지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변증의 목표는 말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연자는 "진리가 폭력적이거나 모욕적인 방식으로 선포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파토스(Pathos): 듣는 사람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 변증을 통해 청중에게 불러일으켜야 할 핵심 감정은 위협, 두려움, 불안, 걱정이 아니라 바로 희망입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지옥의 공포를 주입하거나 불안감을 자극해 굴복시키려는 일부 접근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입니다. 기독교의 메시지 안에 참된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로고스(Logos): 주장의 논리 기독교의 희망은 사적인 신비 체험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적인 질문 앞에서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이유(logos)'를 가진 희망입니다. 변증은 기독교 신앙이 비이성적인 도약이 아니라, 충분히 설명 가능하고 이성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음을 전제합니다.
결론적으로 변증의 목표는 논쟁에서 이기려는 '빠른 생각'의 충동을 제어하고, 온유하고 존중하는 품성(에토스)으로, 듣는 이에게 희망(파토스)을 불러일으키는 합리적인 진리(로고스)를 '느리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5. '신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기독교 문해력'을 갖추면 된다
신앙을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 전문적인 신학 공부를 고민하는 평신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강연자는 설득력 있는 비유를 들어 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약을 먹기 위해 의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고,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법학을 전공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전문 신학은 그 자체로 고도로 전문화된 학문의 영역입니다.
그 대신 강연자가 제안하는 대안은 바로 '기독교 문해력(Christian Literacy)'을 갖추는 것입니다. 기독교 문해력은 두 가지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통시적 차원(Diachronic Dimension) 기독교가 역사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해왔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공시적 차원(Synchronic Dimension) 현대 사회의 다양한 영역 속에서 기독교와 기독교 신앙이 맺고 있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전문 신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교양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전문 신학 지식을 암기하는 '빠른 생각'이 아니라, 기독교가 세상과 맺어온 관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느린 생각'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결론
신학은 먼지 쌓인 학문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단단하고 질서 있게 만드는 필수적인 '느린 생각'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어릴 적 주일학교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단순한 믿음에서 출발해, 세상과 소통할 줄 아는 성숙한 '기독교 교양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신앙을 향한 느리고 신중한 생각은 때로는 불편할 수 있지만, 결국 우리를 더 깊은 진리로 인도할 것입니다.
당신의 신앙에서 '느리게 생각하기'를 적용해 본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들여다보시겠습니까?

https://youtu.be/65L476rDjGw?si=5mqbP9_ZRt48yW-I
신앙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뒤집을 5가지 놀라운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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