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나무 아래 내 마음을
저 나무 아래 내 마음을 기댄다네
마음을 다 놓고 갔던 길은 일테면
길이 아니고 꿈이었을 터 아련함으로 연명해온
생애는 쓰리더라
「꽃핀 나무 아래」, 허수경
잊을 수 없는 장소는 잊을 수 없는 시간의 다른 이름이다. 그들이 많은 곳을 함께 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그녀와 함께 아주 멀리, 세상 끝의 이미지를 가진 장소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바람의 얼굴을 하고 함부로 떠나는 일은 그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한때, 여행 가방에 집착한 적이 있었다. 어떤 여행 계획도 없이 트렁크를 구경하거나 충동적으로 그것을 사들이는 것은, 그의 허영 중의 하나였다. 그 떠남의 기표에 그가 매료되었던 것은, 그가 현실의 중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상상적 여행 속으로 침잠했다. 모든 여행은 현세의 바깥을 향한 충동이라는 측면에서 '임사(臨死)' 의 체험이다. 귀환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은 죽음뿐이다.
완전한 사랑이란 돌아올 수 없는 여행 같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돌아와야 하고,
그래서 사랑의 여행은 지속되지 않는다.
떠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않았던 그가 좋아하던 공원의 호수가 있었다. 적당히 낡아서 이제는 그 인공의 정원들마저 자연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 공원은 호수를 품고 있어서 공원다웠다. 그리고 그 호수의 주변에는 제법 자란 나무들이 서 있었다. 어느 가을의 초입, 그들에게 산책의 기회가 주어졌다. 세상의 초록들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어떤 열정도 그 푸른빛의 쇠락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즈음, 그들은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잔잔한 수면과 가볍게 스치는 바람은, 어떤 조용한 도취, 절제된 황홀감을 불러들였다. 시간은 수면의 잔잔한 파문처럼, 조용히 번져갔다. 더할 나위 없는 연인들의 시간이었다. 그들의 시야에 함께 들어온 것은 호수 저편의 나무 한 그루였다. 그 나무가 눈에 띄었던 것은, 그것만이 유일하게 계절을 앞질러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풍이 막 시작되려 하는 주위의 나무들과는 달리, 그 나무는 혼자 이미 짙은 갈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앞질러 가는 돌연변이처럼, 그 나무는 늦가을의 시간으로 진입해 있었다. 그들은 나무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이를테면 '귀룽나무' 같은 이름이라도 괜찮았다. 그들은 그 나무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어떤 조바심과 외로움에 침윤되었다.
"저 나무도 우리처럼 성질이 급한 거야."
그렇게 말한 것이, 그였어도 그녀였어도 상관은 없었다. 한순간의 달콤한 미풍이 다시 그들을 흔들었고, 그 순간 어떤 낭만적인 약속이 성립된 것을 그들은 알았다. 그 나무의 계절에 대한 착오를 그들의 사랑과 동일시했을 때, 이미 그 나무는 낭만적인 표상이 되어 있었다. 가령 어느 어긋난 세월을 지나, 우연히 그 나무 아래서 그들의 사랑이 다시 시작될 것 같은, 그런 진부한 약속 같은 것.
낭만적 약속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다.
그 약속의 무기력과 무의미를 간파하는 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있는 장소가 그 사람을 말해줄 것이다. 어떤 장소와의 결별이란 어떤 시간과의 결별이기도 하다. 한 사람에게 하나의 장소와의 결별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는 그 어느 여름날 그 나무를 혼자 찾아갔다. 마음을 다 놓고, 길이 아닌 어떤 꿈처럼. 여름날의 나무는 지극히 평범한 녹음에 싸여 있었다. 낭만적 약속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다. 우연히 그곳에 그녀가 와 있을 것 같은 상투적인 환상은 처음부터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달콤한 우연에 기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만 그녀의 부재를, 그 부재의 장소를 보고 싶었다. 그 나무 아래 서 그 부재의 구체성을 느끼고자 했을 때, 그는 자신 안에 도사린 또 다른 낭만적 환상을 발견했다. 어쩌면 다른 시간에 그녀가 그의 부재를 만나러 그곳에 왔을 수도 있다는. 혹은 미지의 어떤 미래에 그녀가 그곳에 들를 수도 있다는. 그는 자기 안에 또 하나의 환상이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해 약가 절망했다. 그것은 확인할 수 없는 아련한 환상이었다. 마치 이 시간, 지구의 저펴에서 같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는 다만 그녀의 부재를, 그 부재의 장소를 보고 싶었다.
사랑의 장소와 낭만적 약속
에피소드는 사랑, 상실, 그리고 장소와 시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습니다. 화자는 허수경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하여, '잊을 수 없는 장소는 잊을 수 없는 시간의 다른 이름'이라는 전제를 탐구합니다. 이 글은 여행과 현실의 중력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하며, 여행의 충동을 '임사(臨死)'의 경험에 비유하고 완전한 사랑을 '돌아올 수 없는 여행'에 빗댑니다. 또한, 화자는 공원 호숫가의 늦가을 나무를 중심으로 한 연인들의 낭만적인 약속의 장면을 묘사하고, 시간이 지나 그 약속의 무의미함을 간파하는 슬픔을 다룹니다. 마지막으로,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와 그 부재의 장소를 확인하려 홀로 나무를 찾아가는 행위를 통해, 여전히 남아있는 낭만적 환상에 대한 미세한 절망감을 표현하며 마무리됩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본질과 그것이 남기는 부재(不在)와 환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이상적인 완전함과 현실의 중력 사이에서 좌절되며, 그 실패의 본질은 단순히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넘어섭니다.
1. 현실의 중력에 갇힌 사랑의 이상 (The Ideal of Love Trapped by the Gravity of Reality)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라는 이상적인 형태로 정의됩니다.
• 완전한 사랑의 정의: "완전한 사랑이란 돌아올 수 없는 여행 같다"고 묘사되지만, 이러한 완전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 현실의 제약: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사랑의 여정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즉, 삶이라는 조건 자체가 완전한 사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 떠남의 좌절: 화자의 대상(그)은 현실의 중력에 갇힌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세상 끝의 이미지를 가진 장소'로 멀리 떠나고 싶어 했지만, '바람의 얼굴을 하고 함부로 떠나는 일은 그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서술을 통해 이상적인 도피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음이 드러납니다.
• 허영과 집착: 떠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여행 가방을 구경하거나 충동적으로 사들이는 '떠남의 기표'에 매료되었는데, 이는 그가 현실의 중력에 갇혀 있음을 의미하는 허영이었습니다.
2.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낭만적 약속 (The Powerless and Meaningless Romantic Promise)
이룰 수 없는 사랑은 흔히 낭만적 약속으로 표상되지만, 이 약속의 본질적인 무의미함이 좌절의 핵심입니다.
• 낭만적 표상: 화자와 대상이 함께 앉았던 호숫가 벤치에서, 그들은 계절을 앞질러 홀로 짙은 갈색을 뿜어내던 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 나무의 계절적 착오를 그들의 사랑과 동일시하며, '낭만적인 표상'으로 만들었습니다.
• 진부한 약속: 그 나무 아래서 어긋난 세월을 지나 사랑이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진부한 약속이 성립되었습니다.
• 슬픔의 본질: 낭만적인 약속이 슬픈 이유는 단순히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약속의 "무기력과 무의미를 간파하는 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낭만적인 환상이 결국 현실 앞에서 힘을 잃게 됨을 깨닫는 순간이 가장 큰 슬픔을 가져옵니다.
3. 부재와의 대면과 희미한 환상 (Confronting Absence and Vague Fantasy)
사랑의 실패 이후, 화자는 관계의 종결을 확인하기 위해 부재의 장소를 찾았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희미한 환상으로 남아 절망을 안깁니다.
• 부재의 확인: 그는 어느 여름날 홀로 그 나무 아래를 찾아갔는데, 이는 달콤한 우연에 기대지 않는 그가 "다만 그녀의 부재를, 그 부재의 장소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곳에 서서 부재의 구체성을 느끼고자 했습니다.
• 꿈과 같은 생애: 마음을 다 놓고 갔던 길은 '길이 아니고 꿈이었을 터'이며, 아련함으로 연명해온 생애는 '쓰리더라'고 시적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여파로 남은 쓰라린 감정입니다.
• 남겨진 절망적인 환상: 부재를 확인하는 순간, 그는 자기 안에 도사린 또 다른 낭만적 환상을 발견하고 약간 절망합니다. 이 환상은 '다른 시간에 그녀가 그의 부재를 만나러 왔을 수도 있다'거나, '미지의 미래에 그녀가 그곳에 들를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환상은 확인할 수 없는 아련한 환상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전히 놓아버릴 수 없는 사랑의 잔상입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마치 지상에 내려와 잠시 쉬었다 가야 하는 천국의 지도와 같습니다. 완전한 사랑(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지도가 주어졌으나, 살아있는 한 현실(돌아와야 하는 조건)의 중력 때문에 결코 끝까지 따라갈 수 없고, 결국 돌아와 그 지도가 무의미했음을 깨닫게 되는 슬픔인 것입니다.
여행과 죽음
'여행(旅行)'과 '죽음(死亡)'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현세의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궁극적인 충동을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핵심적인 신학적 개념으로 제시됩니다.
모든 여행이 현실의 제약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진정한 '돌아오지 않는 떠남'은 오직 죽음만이 허락한다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1. 여행: 현세 바깥을 향한 충동이자 '임사 체험'
화자자는 여행의 본질을 현세의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으로 정의합니다.
• 현세 바깥을 향한 충동: 모든 여행은 "현세의 바깥을 향한 충동"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됩니다. 이는 인간이 현재의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나고자 하는 근원적인 욕구를 반영합니다.
• 임사(臨死) 체험으로서의 여행: 이러한 충동 때문에 여행은 "'임사(臨死)'의 체험"과 동일시됩니다. 즉, 여행은 실제 죽음은 아니지만, 현세에서 잠시 벗어나는 일시적인 '죽음에 가까운' 경험인 것입니다.
• 좌절된 이상: 화자의 대상인 '그'는 현실의 중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바람의 얼굴을 하고 함부로 떠나는 일"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대신 상상적 여행 속으로 침잠하거나, 여행 계획 없이 트렁크를 사들이는 '떠남의 기표'에 집착했는데, 이는 그가 현실에 갇혀 있음을 의미하는 허영이었습니다. 그의 여행의 욕망은 "세상 끝의 이미지를 가진 장소"로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형태였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2. 죽음: 유일하게 귀환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
여행이 '임사 체험'이라면, 죽음은 유일하게 완전성을 달성하는 여행으로 대비됩니다.
• 비귀환(非歸還)의 조건: 자료는 "귀환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은 죽음뿐"이라고 명시하여, 죽음만이 현세의 중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경로임을 선언합니다.
• 삶의 조건으로서의 귀환: 반면, 살아 있는 한 인간은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제약을 받습니다. 이 '돌아와야 하는' 조건 때문에 완전한 이상(理想)은 삶 속에서 지속될 수 없습니다.
• 완전한 사랑과의 연결: 이 '귀환하지 않는 여행'의 개념은 완전한 사랑과도 연결됩니다. "완전한 사랑이란 돌아올 수 없는 여행 같다"고 묘사되는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상징하는 완전함은 곧 삶의 제약을 벗어난 영원성, 즉 죽음의 속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행과 죽음의 관계는 '현실의 중력(삶)'과 '이상적인 완전함(죽음)' 사이의 영원한 투쟁을 나타냅니다. 인간은 여행을 통해 현세를 벗어나 영원히 떠나고자 하는 충동(임사 체험)을 느끼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반드시 돌아와야만 하므로, 이 이상적이고 완전한 '돌아오지 않는 여행'은 오직 죽음으로써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여행과 죽음의 관계는 마치 이륙(離陸)은 했으나 착륙하지 않는 비행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같습니다. 현실의 비행(여행)은 반드시 연료가 다하기 전에 지상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죽음이라는 비행은 그럴 필요 없이 영원히 현세를 벗어난 바깥(현세의 바깥)을 향해 나아가며, 이로써 비로소 완전한 '떠남'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낭만적 약속.
낭만적 약속은 자료에서 이상(理想)적인 사랑이 현실의 중력(重力)에 굴복하는 지점을 상징하며, 그 약속 자체가 지니는 무기력함 때문에 본질적으로 슬픈 것으로 정의됩니다.
1. 낭만적 약속의 성립과 상징
낭만적 약속은 계절적 착오를 보이는 한 나무를 통해 성립되었습니다.
• 배경: 이 약속은 "더할 나위 없는 연인들의 시간"이었던 어느 가을 초입,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잔잔한 수면과 가벼운 바람은*"조용한 도취, 절제된 황홀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 상징화된 나무: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주위의 나무들과 달리 유일하게 계절을 앞질러 홀로 짙은 갈색을 뿜어내던 한 나무였습니다. 이 나무는 마치 시간을 앞질러 가는 "돌연변이처럼" 늦가을의 시간으로 진입해 있었습니다.
• 약속의 매개: 그들은 그 나무의 "계절에 대한 착오"를 자신들의 사랑과 "동일시"했고, 이 나무는 곧 "낭만적인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 나무도 우리처럼 성질이 급한 거야"라고 말하며, 그 나무가 만들어내는 조바심과 외로움에 침윤되었습니다. 이러한 대화는 "한순간의 달콤한 미풍" 속에서 "낭만적인 약속이 성립된 것"을 그들 스스로 알게 했습니다.
2. 약속의 내용과 진부함
성립된 낭만적 약속은 미래의 우연한 재회를 기대하는 "진부한 약속"이었습니다.
•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 그 약속은 "가령 어느 어긋난 세월을 지나, 우연히 그 나무 아래서 그들의 사랑이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종류였습니다.
• 현실의 중력: 이 약속은 '그'가 현실의 중력에 갇혀 바람처럼 떠나는 '임사(臨死)의 체험'으로서의 여행을 실행하지 못하고, 사랑의 여행이 지속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사랑의 완전성을 유지하려는 최후의 낭만적 시도였음을 시사합니다.
3. 낭만적 약속의 본질적 슬픔
자료는 낭만적 약속이 슬픈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통찰을 제시합니다.
• 슬픔의 원인: 낭만적 약속은 단순히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의 무기력과 무의미를 간파하는 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 무기력의 인식: 이는 사랑의 환상과 낭만이 현실의 냉정한 시간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결국 모든 낭만적 언약이 삶의 제약 속에서 소멸할 운명임을 깨닫는 순간이 가장 큰 슬픔을 가져옴을 의미합니다.
4. 관계 결별 후 남겨진 환상
관계가 끝난 후, 화자(그)는 낭만적 약속의 장소를 찾아갔지만, 이는 약속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 부재의 확인: 그는 "달콤한 우연에 기대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그곳에 그녀가 와 있을 것이라는 상투적인 환상을 품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다만 그녀의 부재를, 그 부재의 장소를 보고 싶었"고, 그 나무 아래 서서 "부재의 구체성"을 느끼고자 했습니다.
• 또 다른 절망적인 환상: 그러나 그는 부재를 확인하는 순간, 자기 안에 "또 다른 낭만적 환상"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고 "약간 절망"했습니다. 이 환상은 과거의 약속이 재현되리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에 그녀가 그의 부재를 만나러 왔을 수도 있다는" 또는 "미지의 어떤 미래에 그녀가 그곳에 들를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확인 불가능성: 그는 이러한 환상이 "확인할 수 없는 아련한 환상"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이처럼 낭만적 약속은 현실에서 완전히 실패했을 때조차, 확인 불가능한 잔상(殘像)으로 남아 인간을 괴롭히는 속성을 지닙니다.
시간과 장소.
시간(時間)과 장소(場所)는 단순한 물리적 배경을 넘어, 기억과 감정의 영속성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로 다루어집니다.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로 묘사되며, 특히 '잊을 수 없는 장소'는 곧 '잊을 수 없는 시간'의 다른 이름으로 정의됩니다.
1. 시간과 장소의 동일성과 결별
자료는 시간과 장소의 관계를 거의 동의어 수준으로 격상시킵니다.
• 동일성: "잊을 수 없는 장소는 잊을 수 없는 시간의 다른 이름"입니다. 즉, 장소는 감정적으로 중요한 시간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용기(容器) 역할을 합니다.
• 결별의 어려움: 이러한 동일성 때문에 관계의 단절은 시간과 장소 모두와의 싸움이 됩니다. "어떤 장소와의 결별이란 어떤 시간과의 결별이기도 하다"고 명시됩니다. 한 사람이 과거를 완전히 놓아버리기 위해서는, 장소와의 결별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2. 낭만적 장소: 시간의 착오가 만들어낸 표상
두 연인의 낭만적 약속이 성립된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간의 비정상성(非正常性)**이 투영된 공간이었습니다.
• 구체적인 장소: 그들이 앉았던 곳은 "적당히 낡아서 인공의 정원들마저 자연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공원의 호숫가 벤치였습니다.
• 특별한 시간: 그들의 사랑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는 "세상의 초록들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던 "어느 가을의 초입"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조용한 도취, 절제된 황홀감을 불러들였"던 "더할 나위 없는 연인들의 시간"이었습니다.
• 시간의 돌연변이: 호숫가 나무들 중 유일하게 "계절을 앞질러" 홀로 짙은 갈색을 뿜어내던 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마치 시간을 앞질러 가는 돌연변이처럼, 그 나무는 늦가을의 시간으로 진입해 있었"습니다.
• 낭만적 표상: 그들은 이 나무의 "계절에 대한 착오를 그들의 사랑과 동일시"했고, 이 나무는 미래의 재회를 약속하는 "낭만적인 표상"이 되었습니다. 이 장소는 시간이 어긋나도 사랑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진부하지만 강력한 희망을 담게 되었습니다.
3. 부재의 장소와 시간의 충돌
관계가 끝난 후, 화자(그)는 낭만적 시간이 응축된 그 장소를 다시 찾아감으로써 결별의 구체성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 목적: 그는 "달콤한 우연에 기대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재회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녀의 부재를, 그 부재의 장소를 보고 싶었다"는 이유로 홀로 그 나무를 찾아갔습니다.
• 시간의 대비: 그가 찾아간 시간은 "어느 여름날"이었으며, 이는 낭만적 약속이 이루어졌던 "가을 초입"과 대비됩니다. 여름날의 나무는 "지극히 평범한 녹음에 싸여 있었다". 이는 낭만적 시간이 사라지자 장소의 특별함도 소멸했음을 보여줍니다.
• 부재의 구체성: 그는 그 나무 아래 서서 "부재의 구체성"을 느끼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 장소는 또 다른 시간적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는 "다른 시간에 그녀가 그의 부재를 만나러 그곳에 왔을 수도 있다는" 혹은 "미지의 어떤 미래에 그녀가 그곳에 들를 수도 있다는" 환상을 발견하고 절망했습니다. 이 환상은 확인 불가능하며 아련한 상태로 남아, 장소에 영원히 묶인 채 화자를 괴롭힙니다.
4. 공간을 향한 궁극적인 욕망
자료는 장소에 대한 욕망이 단순한 여행을 넘어 시간과 현세를 초월하려는 충동과 연결됨을 시사합니다.
• 초월 욕망: '그'는 현실의 중력에 갇혀 있었지만, 언제나 그녀와 함께 "아주 멀리, 세상 끝의 이미지를 가진 장소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이는 현세의 삶(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입니다.
• 여행과 죽음: 모든 여행은 "현세의 바깥을 향한 충동"으로서 "'임사(臨死)'의 체험"이며, 진정한 초월은 오직 "귀환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은 죽음뿐"이라는 언급을 통해, 시간과 장소의 구속으로부터의 궁극적인 해방은 오직 죽음에서만 이루어짐을 암시합니다.
부재의 환상
'부재의 환상(不在의 幻想)'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남긴 최후의 잔상이자, 관계의 종결 후에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인간을 괴롭히는 확인 불가능한 낭만적 기대를 의미합니다. 이는 현실의 중력과 결별하고자 하는 화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절망적인 잔여물입니다.
1. 부재의 구체성을 확인하려는 시도
화자(그)는 관계의 종결과 낭만적 약속의 무의미함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부재의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 낭만적 기대의 거부: 그는 "달콤한 우연에 기대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그녀가 와 있을 것이라는 상투적인 환상은 애초에 품지 않았습니다.
• 목적: 그가 그 장소(계절을 앞질러가던 나무 아래)를 홀로 찾아간 유일한 목적은 **"다만 그녀의 부재를, 그 부재의 장소를 보고 싶었"**고, 그 나무 아래 서서 **"부재의 구체성"**을 느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2. 예기치 않은 또 다른 낭만적 환상의 발견
부재를 확인하는 순간, 화자는 이미 제거되었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낭만적 환상'이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고 "약간 절망"했습니다.
• 환상의 내용: 이 환상은 과거의 약속(재회)이 성취되리라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이는 다음과 같은 확인 불가능한 시나리오였습니다.
◦ 다른 시간대의 부재 확인: "어쩌면 다른 시간에 그녀가 그의 부재를 만나러 그곳에 왔을 수도 있다는" 환상.
◦ 미래의 가능성: "혹은 미지의 어떤 미래에 그녀가 그곳에 들를 수도 있다는" 환상.
• 낭만적 약속의 영속성: 이는 낭만적 약속의 내용(재회)은 실패했지만, 그 약속을 낳았던 낭만적인 사고방식 자체는 여전히 화자 안에 남아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과거의 관계가 끝났다는 '부재의 구체성'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재가 다른 시간이나 미래의 장소에서는 **'서로를 찾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의 잔재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습니다.
3. 부재의 환상이 주는 절망과 비확인성
이러한 부재의 환상은 화자에게 희망이 아닌 절망을 안겨주는데, 그 이유는 환상이 확인 불가능한 아련함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절망의 근원: 화자는 "자기 안에 또 하나의 환상이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해 약간 절망했"는데, 이는 그가 이룰 수 없는 사랑과의 결별을 시도했지만, 그 결별이 완전하지 못하고 여전히 미결 상태의 낭만적 잔상에 묶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 비확인성(非確認性)의 비유: 이 환상은 "확인할 수 없는 아련한 환상"으로 비유됩니다. 마치 "이 시간, 지구의 저편에서 같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 환상은 진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화자가 현실적으로 검증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결국, 부재의 환상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 현실의 중력 속에서 소멸하고 난 뒤에도, 시간과 장소의 동일성 속에서 영원히 남아, 화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현세의 바깥을 향해 갈망하게 만드는 정서적 잔류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환상은 고통스러운 아련함으로 연명해온 그의 생애가 "쓰리더라"는 시적 표현과 연결되며, 완전한 사랑(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 좌절된 후 남는 쓰라린 감정의 근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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