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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오늘 하루,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함으로써.

by 이번생 2025.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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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자기 착취의 시대

  
   햇살이 창문을 넘어 내 방 바닥 위로 부드럽게 스며든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지만, 마음은 여전히 분주하다. 손에는 스마트폰이 놓여 있고, 화면 속 친구들의 삶은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 누군가는 새벽부터 달리기하고, 누군가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며, 또 누군가는 브런치 카페에서 사진을 찍는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조급함과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나는 오늘 무엇을 했나? 나는 왜 이렇게 느리게 살아가는가?’ 스스로를 심판하는 마음이 침대 위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한병철은 이 시대를 ‘피로사회’라고 불렀다. 육체적 피로를 넘어, 스스로를 착취하는 정신적 피로가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회. 우리는 외부 명령이 없어도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자기 개발과 자기 관리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채찍질한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자유는 스스로를 속이는 마스크일 뿐이다. 나는 그 마스크를 쓰고 살아온 것이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본다. 가을 하늘은 높고 맑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보며, 나는 마음속 깊이 쉼을 갈망한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이 찾아온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는 뒤처지는 걸까?’ 이 생각이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서늘하게 올라온다. 마음이 쉬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해야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해야 할 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SNS 속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끊임없이 나를 재단하고 비교한다. 휴식조차 생산성을 위한 준비 단계가 되고, 취미마저 자기 브랜딩과 연결되면서, 나는 존재 자체가 평가의 대상임을 느낀다.


   나는 창가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한병철이 말한 작은 실천을 떠올린다. 하루 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 멍하니 존재를 느끼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을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선물한다. 아무 목적 없이 창밖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잊고 있던 나를 만난다. 해야 할 일 대신 느끼고 싶은 상태를 떠올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시간을 보내니, 나는 조금씩 ‘있는 나’로 돌아온다. 성장과 성취가 아닌, 회복을 목표로 하는 삶의 첫 발걸음이다.


   잠시 후, 나는 침대에 다시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내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나는 지금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지금 회복 중이야.” 단순한 말이지만, 내 존재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내 존재 자체를 받아들인다. 느리고, 무능하고, 불안정한 나조차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이 순간, 쉼은 회피가 아니라 회복이 된다.


   바람이 창문 틈새로 스며들어 내 얼굴을 스친다. 나는 눈을 감고 그 감촉을 온몸으로 느낀다. 나는 기계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한 인간임을 느낀다. 피로사회 속에서 나는, 잠시나마 ‘해야 하는 나’에서 벗어나 ‘있는 나’로 돌아왔다. 아무 이유 없이 허락한 작은 쉼 속에서, 나는 삶의 온기와 깊이를 다시금 느낀다.


   저녁이 되자 창밖은 분홍빛으로 물든다.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말한다. “오늘은 그냥 쉰다. 아무 이유 없이 쉰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삶은 빠르게 달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가만히 존재하며 스스로를 만나고 받아들이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이 작은 쉼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기쁨을 맛본다. 오늘 하루,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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