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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본질을 향해 걸어가는 사랑 ― 에로스적 사랑에 대한 철학적 성찰

by 이번생 2026.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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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본질을 향해 걸어가는 사랑

― 에로스적 사랑에 대한 철학적 성찰


   사람은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이라도,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 본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눈길이 머물고, 스쳐 지나간 짧은 순간이 오래 마음속에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경험 말입니다. 어떤 이는 그 사람의 눈빛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어떤 이는 말투나 분위기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친밀감을 발견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떠오르고, 괜히 더 알고 싶어지며,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뜨거운 형태를 사람들은 흔히 ‘에로스적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Erich Fromm은 인간의 사랑을 여러 유형으로 나누며, 에로스적 사랑을 단순한 감정 이상의 것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에로스를 단지 육체적 욕망이나 낭만적 설렘 정도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와 완전히 하나 되고자 갈망하는 깊은 충동이며, 서로의 삶과 본질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 열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에로스(Eros)’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신에서 유래했습니다. 로마 신화에서는 큐피드(Cupid)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설 속 큐피드는 사랑의 화살을 쏘아 사람들로 하여금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사랑을 운명처럼 찾아오는 감정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두 사람이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세상이 멈춘 듯 서로에게 빠져드는 장면은, 에로스적 사랑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환상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프롬은 그런 낭만적 이미지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깊이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로스적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 전제는 내가 나의 본질에서부터 사랑하고,
상대의 본질을 경험하고자 한다는 데 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연애론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상대에게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프롬은 사랑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자기 자신의 본질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타인의 본질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늘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더 잘해야 인정받으며, 부족함을 드러내면 가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부족할까”라는 생각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인간은 결국 사랑조차도 인정받기 위한 수단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랑 속에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합니다. 상대가 나를 떠날까 두렵고, 사랑받지 못할까 초조해하며,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의 가치를 확인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에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프롬은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를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깊이 경험하려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는 말입니다. 사랑은 단순히 상대를 바라보는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기쁨과 상처, 두려움과 희망,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까지 함께 이해해가려는 과정입니다. 결국 사랑은 한 인간의 세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에는 상대의 좋은 모습에 끌립니다. 다정한 말투, 멋진 외모, 따뜻한 배려, 자신과 잘 맞는 성격 같은 것들에 설렙니다. 처음의 사랑은 마치 축제처럼 아름답고 눈부십니다. 상대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웃게 되고, 짧은 메시지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관계는 점점 현실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익숙함이 생기고, 서로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부분이 때로는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의견 차이로 다투게 되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며, 상대가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많은 관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무너집니다. 사람들은 처음의 설렘이 사라지면 사랑도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프롬은 오히려 그 순간부터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환상이 걷힌 뒤에도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가. 상대의 부족함을 발견한 뒤에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는가. 사랑은 바로 그 질문 앞에서 깊이를 갖게 됩니다.


   어쩌면 인간은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을 가장 깊이 마주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상대를 비추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 상처와 결핍까지 만나게 됩니다. 상대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이해받지 못할까 아파하며, 때로는 사랑 속에서 가장 연약한 모습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상대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용기, 그리고 상대의 진짜 모습을 끝까지 바라볼 용기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상처받을까 봐 마음을 숨기고, 버려질까 봐 가면을 씁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가면과 가면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본질과 본질이 만나는 데서 시작됩니다.


   프롬은 특히 에로스적 사랑에서 육체적 결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몸의 친밀함은 사랑의 표현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랑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신적·감정적 결합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사랑은 깊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나누며, 존재의 외로움까지 함께 견디고자 할 때 사랑은 단순한 욕망을 넘어 하나의 삶이 됩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사랑조차 소비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빠르게 사랑에 빠지고, 또 빠르게 관계를 끝냅니다. 깊이 이해하기보다 쉽게 판단하고, 기다리기보다 더 자극적인 관계를 찾아 떠납니다. 그래서 인간은 점점 더 많은 관계를 맺으면서도 동시에 더욱 깊은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향해 계속 걸어가는 일이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반복해서 노력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고 책임이며, 끝내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의지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이 평생 사랑을 갈망하는 이유는, 사랑 속에서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완전히 이해받고 싶어 하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를 끝까지 이해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 그 두 갈망이 만나는 곳에서 인간은 가장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에로스적 사랑은 단순히 뜨거운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의 본질을 향해 다가가려는 용기이며,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끝내 타인과 연결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아름다운 몸부림입니다.




https://youtu.be/Qa7FCaVHXfs?si=2FBmAruQyTM2Iez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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