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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를 조망하다.

by 이번생 202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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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오늘은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근들어 윤석열 정부가 보이는 여러 비상식적 행태들로
많은 국민들의 염려와 불만 속에서
과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우리 한국정부가
현재 발딛고 있는 지금의 정치경제 현실이 온당한것인지...
한 명의 근대 과학철학자의 시선과 조망을 통해 비춰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의 정부는 현재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고전으로 부터 그 지혜를 탐구해보았습니다.

 

1930년대 과학철학계의 스타였던 칼 포퍼는
민주주의 체제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눈을 돌립니다.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당시에 달나라보다 멀다고 말해지던
뉴질랜드로 망명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포퍼는 당연히 의문을 품습니다. 
'어떻게 독일은 나치즘에 빠져들게 되었는가?'

 

이 의문은 파시즘과 나치즘과 마르크시즘에 물들어가는
유럽 전체에 대한 것으로 확대 됩니다.

이 질문을 단초로 그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철학적 옹호론을 펼쳐 냅니다.

 

1945년에 출간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그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 체제가 갖는 이점이 매우 크기 때문이죠.
포퍼는 그 이점을  '열린사회' 라는 대명사로 설명합니다.
반면, 전체주의가 가진 약점을  '닫힌 사회' 라고 설명합니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열린사회의 적' 은 당연히 
전체주의 사회 및 그 사상적 배경 일체입니다. 
놀랍게도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를 배경의 제공자로 지목됩니다.
전체주의 사회는 국가나 민족을 개인보다 우선시해서
개인의 자유가 억압됩니다.
그런데 유럽인들은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던 사람들이죠.
그런 그들이 어떻게 전체주의를 받아들인 걸까요?

 

인간 내면의 이중성

 

포퍼는 그 이유를 '인간 내면의 이중성'에서 찾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합니다. 하지만 자유의 행사에는 필연적으로
'책임' 이 따른다는 사실에 무거운 부담을 느끼죠. 
책임지기는 싫은거죠. 바로 그 무게가 자유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대신 자기보다 더 큰 존재인 지도자나, 신이나 국가에 
선택과 책임이라는 권한을 위임해 버리고는
그 존재에 복종하고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독일인들이 일상의 소소한 의사표현조차 제대로 하지못할
상태에 이르렀으면서도 히틀러에 열광하고 히틀러와 자신을
동일시했던것은 그 단적인 예입니다.

자유를 위임한 사람들은 그런 상태를
'안전' 이자  '질서' 라고 여깁니다.
통제받아 무기력해져 문제점을 비판하고
개선시킬 힘을 상실하는 대가를 치르면서요
이것이 '닫힌 사회' 의 모습입니다. 


반면 열린사회는 비판과 토론을 거친 합의로
문제를 풀어갑니다. 
그러기위해선 담론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그 담론이 정책의
수정과 결정에 실제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본래 과학철학자였던 포퍼는
'하나의 최종적이고도 절대적인 진리' 를
말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비판적 검증을 통해 좀 더 나은 모습이 될 뿐이죠.
현실의 정책이나 체제도 마찬가지라고 포퍼는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비판적이고도 합리적인 방식, 가장 이성적인
방식이라고 합니다.
열린사회에서는 이런 모습이 도처에서 일어납니다.

 

 

점진적인 사회공학이 구현되는 합리적인 사회

 

열린사회는 그래서 완벽한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습니다.
그저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지향할 뿐입니다.
열린 사회의 이런 특징을 잘 보장해주는 체제가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무결점 사회'가 아니라
포퍼의 용어를 빌자면 '점진적인 사회공학이 구현되는 합리적인 사회'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이
조금씩 개선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포퍼는 생각이 다릅니다.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늘 지옥을 만들어냈다" 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마르크스 주의가 체제 자체를 단번에 바꾸려 하다가
폭력과 전쟁과 자유의 억압같은 엄청난 댓가를 치뤗듯 말이지요.

포퍼가 플라톤과 헤겔을 열린사회의 적으로 삼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유토피아를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내놓은 답변은 만만찮은 반론에 봉착했습니다.

우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실제로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를 보증하고 있는것인지 의심스럽고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지나치게 단순하며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철학에 대한 그의 이해 역시 피상적이고
편파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약점들이 이 책의 가치들을 손상시키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전체주의의 한복판에서 이미 그것들의 몰락을 예견했고
그 예견은 적중했었습니다.
또한 비판적 합리성이나 점진적 사회공학 같은 개념이나 
아이디어들은 현대인의 상식처럼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임지기 싫어 자유를 포기하면, 
언제든 전체주의가 습격하리라는 그의 경고와 
열리사회를 만들 힘이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그의 강조와 주장
자체만으로 이 책은 현재의 고전, 아니 미래의 고전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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