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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바른 법의 칼날, 올바른 검사는 누구인가? (1편)

by 이번생 202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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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얼마전 떠들석했던 검찰 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검찰 개혁에 관해서 어떤 관심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검찰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일반인들에게는 저 하늘위에 있는 조직같고,  
담 밖에 있는 조직같이 높이 솟아있는 
철탑위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성역있고, 법의 수호자여야 하는 검찰이 
별안간 국민 앞에 뭔가 상식적이지 않고 
불온한 낯뜨거운 민낯을 비추며 나타나게 됩니다.
급기야 오늘날 검찰은 개혁을 부르는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검찰이 오늘날 국민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국민들의 관심사가 된 데에는
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할 것같습니다. 

 

과거 검찰의 막강 권력

 

 

우병우 같은 검사의 예를 들어보면 박근혜 정부때 
민정수석을 담당했던 그가 당시 혜성처럼 등장했던 
새로운 출신의  검사만은 아니라는 게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면 비극 일것입니다. 
검찰들이 보였던  비상식적 태도와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이 일하는 
방식에 뭔가 부조리함과 편향적인, 그리고 이기적인 행태들이
언론을 통해 새어나오면서 부터 우리는 검찰이라는 조직이 
상당히 큰 문제점을 앉고 있구나! 하고 인식하게 되었죠.
더불어 민주당 의원으로 최강욱 변호사님의 [권력과 검찰] 
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부조리 검사들의 원조들을 거슬러  볼 수 있습니다.
검찰이 급기야 괴물이 되고 말아버렸습니다. 원조를 따져보면
유신시절 굉장히 유명했던 신직수 라는 검사가 있었습니다.
김기춘, 박철언, 우병우로 이어지는 일종의 계보가 있습니다."

신직수라는 사람은 출세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어린 30대에 
검찰 총장을하고, 법무부장관을 거쳐 중앙정보부장을 한 사람입니다. 
신직수가 키운 사람이 김기춘입니다. 김기춘이 젊은 나이에 발탁되어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신직수 덕분입니다.
박철언 이라는 인물은 5공 6공의 황태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막강한 권력으로 죽을뻔했던 
김기춘을 다시 살려준 사람이죠.
우병우는 박철언이 맹활약을 하던 시절에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나도 얼른 자라서 박철언 같은 사람이 될꺼야! 하며 꿈을 키우더니
결국은 박철언 보다 더 심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검찰 조직이 위계가 심해서 
선후배간 질서가 있는 조직으로서 그 계보도 막강할텐데 
어떻게 젊은 검사들이 하늘같은 선배를 누르며 
고공행진으로 주요직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승만 정부때만해도 검찰이 지금처럼 막강한 
권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오히려 경찰이 더 힘이 쎘습니다. 
그 시절에는 검찰서 형사과장이 검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저 사람을 암살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막강 권력이었답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무력으로 중앙정보부와 
군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했지만 국민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것은 치안이 또 중요했기 때문에 
합법성을 가장한 무력이 아닌 법률가 단체가 필요했고 
거기에 힘을 부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우리는 과거로부터 장원급제 하거나 
나라의 높은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쳐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 과거중의 최고가 바로 사법고시 아니겠습니까?

 

유신시대 검찰권력

 

 

그래서 박정희는 전통적으로 옛날로 보면 무관출신 이었는데, 
국민들은 오랜 암묵적인 인식속에 무관이 문관을 누르고 
장악하는 것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풍토를 가졌기에, 
문관출신 중에 소위 가장 출세한 검찰조직을 
자기 발 아래 두면 그림이 좋아보이고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얻겠거니 하고 그때부터 법률가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신직수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박정희가 사단장할때 자신의 법무참모 였던  
신식수를 데려다가 곧바로 검찰총장으로 세웁니다.  
쿠데타 이후 30대 젊은 세력들이 정치권에도 등장하는데 
김종필도 당시 30대 였습니다. 
물론 야당대표였던 김대중, 김영삼 역시 젊은 세력으로 
그들에 맞서 싸운 민주투사 였지요. 
그래서 신직수가 30대의 나이로 검찰총장 벳지를 다는게 
당시에는 그리 어색한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권력을 유지한 기간이 20년 이었으니 
신직수 역시도 그 기간 동안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누렸을지 
예상이 되지요.  

 

 

다음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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