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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기

쉬어야 하는 사회, 쉴 수도 없는 사회

by 이번생 202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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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바쁜 현대인

현대인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일하랴, 아이들 돌보랴, 연로하신 부모님 보살피랴,
가족들 중 누구 하나라도 아프면 자식들이나 부모님들 모시고 병원부터 찾아야 한다.
바쁜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혼한 사람들이나 일하는 부모들만 그런가?
취준생이나 중 고등학생들은 수능이나 면접 취직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쉴새 없이 학업에 매진하고 엄청난 공부의 압박에 시달린다.
공교육은 아무리 봐도 부족하.
남들 다 하는 괴외는 비싸다. 하지만 효과는 학원에 비할바 아니다.
국영수만 잘해서 되겠는가?
예체능이라도 잘해야 학업에서 승부 못본 자녀들은 기라도 펼게 아닌가?
예체능을 위해 학원을 끊자.
태권도, 합기도, 유도, 검도, 주짓수, 미술학원, 피아노, 수영, 컴퓨터, 무용학원 등등
오프라인서 하는 수업도 부족하다.
메이저 강남 선생들의 인강을 과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
인터넷으로도 쪽집게 처럼 잘 가르치는 선생들의 강의가 잘 팔린다.
집에서도 클릭하면 얼마든지 강의를 안방에서도 청취할 수 있다.
엄마 아빠는 골프며, 사교모임에 나가서 주말을 보낸다.
자신보다 뛰어나야 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자신의 유년, 청년시절에는 꿈도 꾸지 않을 사교육 시장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길 기대한다.
그 가열찬 기대에 부응하는지 반발하는지 모를 자녀들은 쉴새없이
주말도 없이 수업, 수업강행군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

정말 슬픈 현실은 대한민국 가정에서 신생아의 처지다.
힘들게 결혼한 부모가 가정을 이루었다.
소중한 보금자리를 약속하고 어렵게 시작된 가정이다.
시가지 한복판은 아니더래도 출퇴근 직장 교통이 비교적 나쁘지 않은
변두리 외각에 조그마한 평수의 아파트 한채를 마련했다.
둘 사이 사랑이 시작되고 얼마 안돼 예쁜 딸 아이가 태어났다.
눈이 똘망똘망한 예쁜 갓난 아이는 부모의 자랑이자,
부부 사이의 사랑의 증표이자 두 부부 사이을 잇는 징검다리같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석이다.
아이의 힘찬 울음소리와 귀엽게 손짓 발짓 몸짓하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직장에서의 고단함도 잠시 잊고 생명이란
그저 신기하고 새롭고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 행복한 가정생활도 잠시
부모의 품을 떠난 갓난애들은 자신들의 부모들은 맞벌이 직장으로 떠나기 바쁘고
아이는 홀로 남아 낯선 조직의 낯선 여자로 인계되면서 자신의 어미를 잊어야 한다.
우유를 먹고 대소변도 낯선이의 품안의 손길로 길들여 져야 하는 운명에 처해진다.
그 어린 나이가 태어난지 채 1년도 안된 어린이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수두룩하다.
아이는 부모의 품을 그리워하기도 전에 단체생활과 어떤 조직문화 속으로 들어간다.
눈치를 보며 자신보다 형이나 누나 또래의 아이들과 같이 자라간다.
자신의 안위와 안정을 낯선 조직안에서 찾아야 한다.
엄마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비정하고 냉정한 현실에
자본주의속 한 어린 인간이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낯설지않은 어린이집 풍경이다.


쉬는 날에도 쉬지 못하는 현대인


이렇게 대한민국 시민들이 바쁜 이유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분주한 와중에도 나름의 짬을 내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말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들이하고, 퇴근 후에는 정다운 사람들과 티타임을 즐기고,
소중한 사람들과 날짜를 맞추어 짬짬이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무릇 존재한다.
그들이 결코 할 일이 없어서 휴가가 많아서 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고, 마음을 들여, 휴식시간을 정해서 쉬는 것이다.
그런 휴식조차 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아서 그런다.
주 5일 열심히 열정을 다한 직장생활 이후 불금의 술과 불토의 가무로도
해결되지 않는 피로도가 쌓이면 더는 어찌할 수 없는 권태가 짓누르기 때문이다.
누군들 놀고 싶지 않겠는가? 그놈의 집 대출 이자, 생활고에 빚 때문에,
아이들 교육때문에 자식들 진로에, 결혼을 위해서 자금 마련해야 한다.
지금 내가 여기서 멈춘다면 우리는 몰락이다.
어떻게든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내가 한발이라도 더 뛰어야 하기에
나는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더욱 쉬어야 한다.
쉬는것도 힘들기 때문에
어떤 날은 격하게 아무것도 그 어떤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현대인의 자아상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을 것이다.

”순수한 휴식은 슬픔의 고통을 치료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다. 그러나 슬퍼하는 사람이 참 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도 휴식이다“ 는
말이 생각난다.

쉬는 날에도 정말 몸과 마음을 제대로 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끊임없는 불안과 우울이 잠식하여 쉼 마저 방해할 것이기 때문에...
피로사회, 우울사회, 권태사회, 어떤 시대적 불안이 엄습하는 큰 무게에 짓눌려 있다.
시지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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