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덴의 나무와 사랑의 자유
에덴동산 한가운데, 하나님은 한 그루의 나무를 두셨다.
모든 나무의 열매는 마음껏 따먹을 수 있었지만, 단 한 그루의 나무만큼은 금하셨다.
그 나무의 이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그리고 인류의 이야기는 바로 그 나무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묻는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왜 그런 나무를 두셨을까?
그분께서 처음부터 두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타락하지 않았을 텐데,
결국 모든 고통의 시작은 하나님의 선택 아닌가?”
이 질문은 정직하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이 물음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야 한다.
그러나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순종의 기계로 만들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간에게 사고할 능력, 선택할 의지, 사랑할 자유를 주셨다.
사랑이란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는 순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복종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남겨두셨다.
그 자유 없이는 인간의 사랑도 진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덴의 나무는 단지 시험의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의 표징, 그리고 사랑의 가능성이었다.
선악과 앞에 선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수도, 자기 욕망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자유 속에서만,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로 설 수 있었다.
물론, 그 자유는 인간을 넘어뜨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넘어짐조차 인간의 역사를 절망으로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그 사랑을 완성하셨다.
인간이 자유로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사랑으로 다시 자유를 회복시키셨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 작은 ‘에덴의 나무’ 앞에 선다.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한다.
진리를 따를 것인가, 욕망을 따를 것인가.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억지로 순종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자유롭게 사랑하기를 기다리신다.
자유 없는 사랑은 노예의 복종이고,
사랑 없는 자유는 방종의 혼돈이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는 사랑으로 완성되는
자유다.
그러므로 오늘도 에덴의 나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는 오늘, 어떤 자유를 선택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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