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폭풍 속에서
클레의 작품 중에는 「새로운 천사」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자신을 얼어붙게 만드는 무언가를 피해 금방이라도 도망칠 듯 보이는 천사를 묘사하고 있는데 휘둥그레진 두 눈과 입,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은 이 같은 천사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아마도 역사의 천사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천사는 고개를 돌려 과거를 바라보지만, 끝없는 자료가 펼쳐진 그곳에서는 폐허위에 또 다른 폐허가 산처럼 쌓여 갈 뿐이다. 천사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죽은 자들을 불러내어 산산이 조각난 파편들을 맞추고 싶어 하지만, 천국에서 불어온 폭풍은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뒤돌아선 천사의 등을 세차게 미래로 밀어낸다. 결국 천사의 눈앞에서 폐허 더미들이 쌓이고 쌓여 하늘에까지 가닿는다. 이 폭풍이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진보다.
-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발터벤야민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그림이 담고 있는 묘한 긴장감과 불안정한 조화를 느꼈다. 휘둥그레진 눈과 활짝 펼쳐진 날개는 단순히 시각적 표현을 넘어, 어떤 절박한 감정을 전달하는 듯했다. 그 천사가 처한 상황은 고요한 천국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딘가로 도망치려 하지만, 동시에 뒤를 돌아보며 과거의 폐허를 복원하고자 하는 모순된 충동에 갇혀 있었다. 이 이미지에서 벤야민이 말한 역사의 천사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역사의 천사가 바라보는 과거는 단순한 기록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폐허 위에 쌓인 또 다른 폐허, 끝없이 이어지는 상흔과도 같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지만, 그 흔적은 현재와 미래를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역사의 천사는 그것을 복구할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다. 그의 등을 떠미는 것은 “진보”라는 이름의 폭풍이다.
이 폭풍은 강력하다. 모든 것을 밀어붙이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부수고 무엇을 남기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관심이 없다. 진보라는 단어가 때로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벤야민이 묘사한 진보의 폭풍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띤다. 그것은 마치 목적 없는 추진력처럼, 역사의 폐허를 더 큰 폐허로 만들며 우리를 미래로 몰아세운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
우리는 흔히 역사를 단절된 시점들의 나열로 이해한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의 집합으로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을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현재와 미래를 형성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설명해주는 거대한 맥락이다. 과거를 복원하려는 천사의 충동은 바로 이러한 역사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그 천사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머무를 수 없다. 폭풍은 우리를 미래로 밀어내며, 진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한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이 변화의 방향을 통제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폭풍에 휩쓸려 가고 있는지 묻는 데 있다.
진보의 의미
진보란 무엇인가? 흔히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으로의 발전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기술의 발전, 사회적 권리의 확장, 경제적 성장 모두 진보의 이름 아래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진보는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폐허 위에 새로운 폐허를 쌓는 과정에 불과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환경 파괴와 노동 착취를 초래했다. 진보라는 폭풍은 이러한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천사의 비유는 이러한 진보의 속성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역사는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잔해와 실패를 복원하려는 노력, 그것을 이해하려는 과정이 동반될 때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를 이룰 수 있다.
미래를 향한 책임
폭풍은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책임을 가진다. 역사의 천사가 고개를 돌려 폐허를 바라보듯, 우리 역시 과거를 잊지 않아야 한다. 과거를 직시하는 일은 단순히 후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필요하다.
결국, 진보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다. 벤야민이 말한 폭풍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선택이 역사의 궤적을 형성할 것이다. 클레의 그림 속 천사가 그렇듯, 우리 역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존재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 속에서 의미를 찾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노력이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자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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