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성숙한 사랑의 5가지 원칙
1.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는 다섯 살 아이에 머물러 있는가?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원하고 꿈꿉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이들이 관계 속에서 더 깊은 공허함과 고립감을 느낍니다. "왜 내 사랑은 이토록 아프고 어려울까?"라는 질문은 현대인의 보편적인 갈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을 '받는 법'에만 몰두해 왔습니다. 소수 컨텍스트에서 지적하듯,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와 교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던 수동적 태도에 여전히 갇혀 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기 위해 생존해야 했던 다섯 살 아이의 태도에 머물러 있지는 않나요? 에리히 프롬의 고전 『사랑의 기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사랑이 운 좋게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주체적으로 연마해야 할 '기술(Art)'임을 선언합니다.
2.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기술'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종종 시장 중심적 사고와 교환 원리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남성은 사회적 성공과 부를, 여성은 외모와 매력을 가꾸어 자신을 시장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상품'으로 포장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과 대등한 상품 가치를 지닌 상대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프롬은 이러한 태도가 사랑을 '유리한 거래'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를 선택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사랑은 나의 생명력을 상대에게 부여하는 능동적인 행위이며, 내가 먼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사랑은 능동적인 행위이며, 누군가에게 기대는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해 가는 삶의 태도이다. 사랑은 받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된다."
3. 완벽한 대상을 찾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많은 이들이 사랑을 '능력'의 문제가 아닌 '대상'의 문제로 오해합니다. 완벽한 짝이 나타나지 않아 사랑을 못 하고 있다고 불평하는 것은, 마치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 "그릴 만한 가치가 있는 완벽한 풍경만 나타나면 당장이라도 명작을 그릴 수 있다."고 믿는 화가의 오만과 같습니다.
사랑은 특정한 대상을 발견하는 기적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발현되는 준비된 힘입니다. 화가가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대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듯,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어떤 대상과도 깊은 유대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리는 도박이 아니라, 내 안의 사랑의 힘을 길러내는 성실한 과정이어야 합니다.
4. 성숙한 사랑을 지탱하는 4가지 철학적 기둥
에리히 프롬은 성숙한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 핵심 요소를 제시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나열이 아닌, 관계를 지탱하는 견고한 철학적 토대입니다.
* 배려(Care):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입니다. 식물에 물을 주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듯, 상대의 성장을 위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투입하는 실천입니다.
* 책임(Responsibility): 이는 외부에서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에 대한 자발적인 응답입니다. 상대가 요청하기 전에 그의 내면적 욕구를 알아차리고 응답하겠다는 주체적인 의지입니다.
* 존중(Respect): 상대를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거나 착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만의 방식대로 성장하도록 돕는 태도입니다.
* 이해(Knowledge): 피상적인 정보를 아는 단계를 넘어, 나를 투영하여 상대의 세계를 내면으로 경험하는 공감적 이해입니다. 상대의 두려움과 본질을 깊이 파고들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5. 존재론적 고독을 해결하는 유일한 열쇠: 합일의 역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홀로 던져진 존재라는 근원적인 '분리감(Separateness)'에서 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약물이나 섹스 같은 퇴행적 시도에 매몰되거나, 군중 속에 섞여 개성을 죽이는 집단 동화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일시적인 마취제일 뿐, 오히려 자아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오직 사랑만이 인간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고립을 극복하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프롬은 이를 '두 존재가 하나가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는 역설'이라 부릅니다. 진정한 사랑 안에서 우리는 타인과 깊이 연결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온전한 개별성을 잃지 않고 더욱 풍요로운 존재로 성장하게 됩니다.
6. 사랑은 매일의 '훈련'과 '용기'로 완성되는 삶의 예술
사랑은 일상의 지루함을 견뎌내고 매일 연마해야 할 기술입니다. 프롬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네 가지 태도가 매일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과 직결된다고 강조합니다.
* 훈련(Discipline):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본능을 억제하고, 매일의 일상 속에서 사랑의 태도를 유지하는 끈기입니다.
* 집중(Concentration): 상대와 함께하는 순간, 다른 잡념 없이 오직 그 관계와 현재의 순간에만 온전히 몰입하는 힘입니다.
* 인내(Patience): 사랑은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농사와 같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관계의 성장을 믿고 기다리는 참을성입니다.
* 용기(Courage): 사랑은 상처받을 위험을 감수하는 담대함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기꺼이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두 영혼 사이의 진정한 친밀함이 싹틉니다.
7. 결론: 이제 당신은 어떤 사랑을 선택하겠습니까?
사랑은 우연히 닥쳐오는 감정의 파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훈련으로 완성해가는 **삶의 예술(Art)**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상품'이 되기 위해, 혹은 내 외로움을 단번에 해결해 줄 '완벽한 대상'을 찾는 데 소중한 삶을 낭비해 오지 않았습니까?
사랑은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를 착취하지 않으며, 그의 성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응답하기로 마음먹는 그 순간 비로소 시작됩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여전히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만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아니면 먼저 사랑을 실천하는 성숙한 어른이 될 준비가 되었습니까?"

https://www.youtube.com/shorts/B5wFfEu_X68?si=0BjbNalv5Io-GVZ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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