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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의 빛과 영혼의 어둠: 피로사회 시대에 안식을 회복하기 위하여

by 이번생 2026.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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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의 빛과 영혼의 어둠: 피로사회 시대에 안식을 회복하기 위하여


저는 종종 저녁 무렵 거실의 풍경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 빛은 과연 무엇의 빛입니까. 화면은 밝게 빛나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둡지 않습니까.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들고 TV를 켭니다. 뉴스가 흘러가고, 예능이 지나가며, 드라마가 이어집니다. 밤이 깊어지면 Netflix와 같은 플랫폼이 조용히 다음 회를 재생합니다. 멈추지 않아도 됩니다.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야기는 스스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안식의 자리입니까, 아니면 소진의 자리입니까.



1. 피로사회와 화면의 긍정성


한병철은 현대 사회를 ‘피로사회’라 부릅니다. 그는 오늘날 인간이 외부의 억압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착취하기 때문에 지친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하지 말라”는 금지가 인간을 눌렀다면, 오늘날에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이 인간을 지치게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볼 수 있고, 무엇이든 접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습니다.

TV와 OTT는 이 긍정의 체제를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구현합니다. “더 볼 수 있습니다.” “다음 회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강요가 아닙니다. 오히려 친절한 초대입니다. 그러나 그 초대는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쉬기 위해 화면 앞에 앉았지만, 사실은 또 다른 소비의 흐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한병철이 말한 성과주체는 끊임없이 자신을 최적화하고, 경험을 확장하며, 자극을 추구합니다. TV 앞에서도 우리는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시리즈를 따라잡아야 하고, 최신 이슈를 알아야 하며, 대화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시청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흐름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2. 투명사회와 사유의 상실


한병철은 또 다른 저서에서 현대를 ‘투명사회’라 설명합니다. 모든 것이 즉시 드러나고, 빠르게 소비되며, 오래 머물지 않는 사회입니다. 화면은 끊임없이 보여 줍니다. 숨김도, 침묵도, 기다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유는 다릅니다. 생각은 속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느림과 침묵 속에서 자랍니다. 신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즉각적인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묵상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화면은 항상 다음 장면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침묵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느 쪽의 음성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까.



3. 타자의 추방과 영적 고립


『타자의 추방』에서 한병철은 현대 사회가 불편한 타자를 밀어낸다고 지적합니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것만 보여 줍니다. 나와 비슷한 취향, 나와 비슷한 감정, 나와 비슷한 생각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신앙은 나와 다른 존재, 나를 넘어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기대를 흔드시고, 나의 계획을 깨뜨리시며, 나를 새롭게 빚으십니다. 그 만남은 때로 불편하고, 때로 아프며, 때로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화면은 나를 흔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유지합니다. 우리는 점점 안전한 이야기 안에서 머무르며, 영적으로는 고립됩니다. 타자를 잃은 사회는 깊이를 잃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타자를 잃은 영혼은 더욱 공허해집니다.



4. 시간의 침식과 안식의 왜곡


하루 네 시간의 시청은 일주일이면 스물여덟 시간이 됩니다. 일 년이면 천 시간이 훌쩍 넘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무엇을 쌓았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안식은 단순히 활동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은 하나님 안에서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화면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것을 쉼이라 부릅니다. 몸은 소파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끊임없이 자극을 따라 움직입니다.

이것은 참된 안식이 아니라, 피로를 잠시 잊는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한병철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과잉의 긍정 속에서 점점 소진됩니다. 많이 보지만 깊이 느끼지 못하고, 많이 접하지만 오래 남지 않습니다.



5. 관계의 거리와 공동체의 약화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TV를 보고 있어도, 진정한 교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화면을 바라보지만, 서로의 마음을 묻지 않습니다. 교회 공동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후의 대화는 짧아지고, 각자는 다시 자신의 화면으로 돌아갑니다.

공동체는 대화와 경청, 질문과 응답 속에서 자랍니다. 그러나 화면은 그 과정을 생략합니다. 우리는 함께 있지만,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6. 멈춤이라는 저항


저는 가끔 의도적으로 화면을 끕니다.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정적이 불안합니다. 손은 다시 리모컨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몇 분의 침묵 속에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빚어지고 있는가.
지금의 습관은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멈춤은 단순한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저항입니다. 과잉의 흐름에 맞서는 작은 결단입니다. 신앙은 어쩌면 이 멈춤에서 시작됩니다. 안식일이 그렇듯, 우리는 일부러 멈추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존재의 중심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7. 화면을 넘어 삶으로


TV는 우리를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오락은 필요할 수 있지만, 삶의 중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선물이며, 동시에 사명입니다.

저는 우리가 다시 사유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다시 기도의 자리를 찾기를 바랍니다. 다시 가족과 눈을 마주하고, 공동체 안에서 대화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화면의 빛보다 말씀의 빛을 더 오래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깊은 침묵일지도 모릅니다. 더 많은 자극이 아니라, 더 깊은 안식일지도 모릅니다.

리모컨을 내려놓는 작은 결단에서부터, 우리의 삶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피로사회 속에서도 안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투명사회의 소음 속에서도 침묵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단순한 시청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존재로 다시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의 시간은 더 이상 소모되지 않고, 의미로 축적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https://youtu.be/QO4Vw3AE_RA?si=Sl5THP3NHX861DVK

화면의 빛과 영혼의 어둠: 피로사회 시대에 안식을 회복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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