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전체 글206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슬픔 없이 지나간 단 순간들을 기억하며 슬픔이 없는 십오 초심보선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고요하고 평화로운.. 2025. 7. 15.
문정희의 “응” - 햇살의 방, 신의 대답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나의 문자'응'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신의 방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해와 달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땅위에제일 평화롭고뜨거운 대답”응““응” - 문정희햇살의 방, 신의 대답대낮이었다.햇살은 너무 가득해서, 어딘가 불경하게 느껴질 만큼 맑고 밝았다.너는 내게 물었지.“지금, 나랑 하고 싶어?”그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그건 몸의 움직임을 묻는 것도, 감정의 방향을 확인하는 것도 아닌,존재와 존재가 얼마나 깊이 침투할 수 있는지를 묻는언어가 할 수 있는 가장 투명한 방식의 고백이었다.나는 잠깐 숨을 들이켰고, 문자 하나를 피워냈다.응그 말은 내 입.. 2025. 7. 15.
사랑 없는 접속, 희망 없는 미래 — 한병철과 스마트폰 시대의 침묵에 대하여 사랑 없는 접속, 희망 없는 미래 — 한병철과 스마트폰 시대의 침묵에 대하여어느 날 문득, 나는 생각했다.하루 동안 내가 ‘무엇’을 가장 많이 만졌는가?사람의 손일까, 따뜻한 커피잔일까, 바람 부는 나무일까.아니다.내 손끝이 가장 자주 접촉한 대상은 스마트폰이었다.현대인의 삶은 손 안의 사각형에 담겨 있다.이 작은 기기는 이제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다.그 안에는 나의 직장, 인간관계, 감정, 소비, 심지어는 종교와 고통까지 다 들어 있다.치과에서조차 우리는 고통을 견디기 위해 화면을 들여다보며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친다.이 묘한 풍경을 철학자 한병철은 이미 감지했다.2023년 4월 11일, 포르투에서 그는 ‘에로스’를 주제로 강연했다.그는 사랑에 대해, 그리고 타자의 소멸에 대해 말했다.사랑이란 나와 다.. 2025. 7. 14.
기도 시간에 눈을 뜬 아이들 기도 시간에 눈을 뜬 아이들가만히 기도하는 아이들 사이한 아이가 눈을 뜬다손끝에 휴대폰,시선은 먼 어디론가 떠나 있다나는 묻는다“이 아이는 지금 기도하지 않는 걸까?”하지만 마음 한 켠작은 속삭임이 들려온다“그 아이도,나를 만나고 싶어 해.”“아직 방법을 모를 뿐이야.”기도는 눈을 감는 일이 아니라마음을 여는 일이란 걸그 아이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그래,하나님은 그 아이의 눈동자 속에도 계시고딴청 피우는 그 순간에도찾아가시는 분이니까나는 다시 기도한다이 아이가 눈을 감는 날보다마음을 열게 되는 날이조금 더 빨리 오기를 2025. 7. 13.
728x90